너무바빠서기도합니다/빌하이벨스/IVP
책을보는시선/기독교도서 2008/08/14 08:56동행함의 기도
너무바빠서기도합니다를 읽고서 쓰는 수기
홍 경 민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아니 아직 여름이 아닌데 더워지기 시작했다.
등에서는 땀들이 흘러내리고 푹푹 찌는 날씨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런 여름이 다가오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게 되지만, 교회에서는 수련회와 여름 성경 학교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간을 정하고 강습회들을 다녀오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보면 마음부터 분주하게 된다.
분주하다 보니 일에 집중하게 되고 어느 순간 지쳐버리게 되기도 한다.
매번 똑같이 반복이 되는 일이면서도 막상 닥쳐진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져 버린 모습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동일한 일을 준비하면서도 지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힘을 더 낼 수 있는 경우도 많이 봤고 경험했다.
이 둘의 차이는 기도가 먼저냐 일이 먼저냐 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도 기도를 한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 기도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기도를 먼저하고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일이 마치는 순간에도 기도하게 된다. 이 작은 우선순위 차이가 큰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너무 많이 들어서 아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기도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해버린 기도 생활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기도는 호흡이라고 한다. 영혼의 호흡… 즉, 행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병들어간 상태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관심해 지기가 쉽다.
특별히,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무감각할 가능성은 높다.
문득, 기도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느새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나 업무상 오게 되는 스트레스들을 받게 되면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피로를 호소하면서 쉼을 가지려고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해결책이 제시되거나 마음의 무거운 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순간을 피하고 싶고 도피하고자 하는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음에는 공허함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 공허함이 길어지면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그 이전의 상태로 다시 복귀해 버린다.
악순환이 된다고 해야 하나?
이런 모습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고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녀온 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여름 성경 학교를 준비하면서 토요일마다 교사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4년 만에 다시 교사를 시작한 내 입장에서는 정말 기도가 필요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 것 같다. 나의 무지함과 무력함을 통해 더 기도하게 된다.
하지만, 기도의 내용들을 돌아보니 너무도 부끄러워진다. 하나님을 믿는 아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기도는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기도하기보다 내 생각을 하나님에게 이야기 하고 주장하는 듯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기도의 시작이 이기심에서 되었기에 기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이내 지쳐버리고 목적을 잃어버린 기도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 정확히 설명 해 주는 사람은 없었고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으니깐 자연스럽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내 기도가 바리새인의 기도와 같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중언부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기도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라는 생각도 종종 해보게 된다.
처음에 기도의 요소를 정의한 ACTS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내 기도가 정말 잘못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간구는 기도의 내용이 될 수 는 있지만, 기도의 전부 일 수는 없다.
그런데, 많은 기도들이 내 자신을 위한 소망의 목록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고 있었다.
그것보다 조금 더 생각을 했다면, 공동체와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기도에는 없다.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정말 잘못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ACTS의 요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높이고 회개가 있어야 하고 감사함의 표현 후에 간구가 있어야 하는데
본말전도가 되어진 기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되어진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가 너무 힘든 족쇄인 것처럼 보이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과연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바뀌어야 함을 보게 된다.
기도가 힘든 것으로 이해되어지다 보니 기도 생활에 대한 핑계만이 늘어나게 된다.
정말 표현 그대로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 입을 맴돌게 되어버렸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에서 기도에 대해 잘못 배운 것이 기도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얼마 전 신문에 방지일 목사님의 이야기가 실렸다.
한 기독교 방송에 나오셔서 이야기 하신 부분이 조명되었는데 관심을 끄는 구절이 있었다.
요즘 통성기도를 하는 성도들을 보면, 만세삼창 하듯 소리를 높이는데 '하나님이 보청기를 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이기에 이불 속에서 내외간에 이야기하듯
소곤소곤 속삭이며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교회에서는 간절히 열심을 다해 기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소리 높여 기도해야 간절히 기도했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의 몸이 뜨거워지면 뜨겁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과연 그럴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기도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에게 큰소리로 외치기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대화는 서로 듣고 이야기 하는 것인데 듣기보다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고 심한 경우는 아예 듣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기도라기보다 일방적인 쏟아놓기가 될 수도 있다.
주기도문에 대해서도 잘못 가르치고 배운 것들이 많아서 습관적으로 외우기도 하고 대표기도를 다들 싫어하니
주기도문으로 마치자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씁쓸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기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피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대학을 다닐 때 선교 단체의 활동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기도 제목은 기도 보다 성령 보다 앞서지 않게 하소서라는 것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 말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보게 되면 이 말이 얼마나 큰 것을 담고 있는지 보게 된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말은
내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그리고 기도가 내 삶에 어떤 부분에 있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다 쓰고 남은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기도의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핑계들로 무릎을 꿇지 못하는 나에게 이 말은 큰 도전이었다.
책에서 저자는 기도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연합은 오로지 기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런 우리의 존재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조금 부자연스럽더라고 하더라도
꼭 기도를 해야한다. 성경학교를 준비하면서 일 중심으로 움직이는 나에게 책에서 이야기한 한 구절은 큰 도전이 되었다.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지만,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이야기한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일하셔야 하는 일들에 우리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한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서 사는 그런 삶을 그려본다.
우리의 모든 일의 진행 과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이 더 크게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 하십니까 라는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기도라는 큰 무기가 있기에 날로 담대해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고 너무도 연약한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