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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8/11/21 16:35
믿음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中 / 존 맥아더/ 부흥과개혁사)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현재 시제로 바꾸어 놓는다.
다른말로 하면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믿음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인다.
믿음은 그 약속을 하신 분에 대한 초 자연적인 확신 의존이다.
믿음은 모호하고 부정확한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무언가에 대한 불확실한 소망이 아니다.
믿음은 지금 이곳에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가져오는 절대적인 신뢰다.
실상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 휘포스 -> 아래에 타시스 -> 서다) (P.56)
믿음은 미래의 실제성에 대한 현재의 확신이다.
우리의 행위는 육체적 노력이 아니라 확신이 낳은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견고한 반석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대상에 헌신하기 때문에 순종한다. (P.60)
믿음은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믿는자라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P.67)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육체적 노력이 아니다.
믿음의 행위는 믿음의 결과지 믿음을 이루는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결코 수동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거듭난 순간부터 믿음은 행위로 나아간다.
믿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슬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조화를 이루어 행동한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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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8/08/05 10:03
IVP BOOKS에서 가져 왔습니다.
구원에 관해 한 번은 생각해 볼 때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김영봉 목사의 글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http://www.ivp.co.kr
주제가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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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그 잡기 어려운 실체
과거 부흥회에서 부흥 강사들이 자주 제기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죽어도 구원받으리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요즈음도 그런 사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대개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렇다!”고 답하자니 자신이 없습니다. 혹은,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왠지 자신의 믿음에 대해 자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아니다!”라고 답하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영생의 선물이 주어진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주저하고 있노라면, 강사는 큰 소리로 ‘믿음 없음’을 책망하며 구원의 교리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그리고 동일한 질문을 다시 묻습니다. 이번에는 모두 안심하고 손을 듭니다. ‘전도 폭발’이라는 전도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에 훈련된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 이 질문으로 말문을 엽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내세에 대한 일말의 의문은 있기 마련이므로, 이 질문은 때로 매우 강력한 효력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협박조의 질문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어느 사이비 종파에서는 이 질문으로 신자들의 믿음을 흔들고 이단적인 구원 교리를 주입합니다. 그 종파에서는 구원받은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면 구원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비슷한 질문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취소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세례를 받고 착실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불행한 계기로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버렸습니다. 이럴 경우,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그가 받은 구원이 여전히 유효할까, 아니면 취소된 것일까? 만일 취소되었다면, 구원은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린 것이란 말인가? 만일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져 살아도 여전히 구원이 유효하다면, 구원에 있어 인간의 노력이 왜 필요한가? 이 질문은 실은 지난 2천 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 줄곧 논쟁되어 온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 논쟁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 문제가 이토록 풀리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구원’이라는 것이 물질적 차원이 아니라 영적 차원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직 물질적인 차원에 대해서도 다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영적인 차원의 일들은 어떠하겠습니까? 둘째, 인간 이성의 한계 때문입니다. 이성은 우리가 믿는 바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성으로 영적 세계의 문제를 밝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전 13:12). 셋째, 인간 언어의 한계 때문입니다. 언어는 참으로 유용한 수단이기는 합니다만, 우리의 감정을 정확하게 담아내기에도 적당하지 않을 정도로 불완전한 그릇입니다. 그 불완전한 그릇으로 영적 차원의 진리를 담아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망 없어 보이는 일입니다. 구원의 문제를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이렇듯 어렵지만, 외면하고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얻은 구원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도는커녕 내 믿음을 지키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에 대해 몇 가지로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언급한 두 종류의 질문은 구원을 한 순간에 일어나 완성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 마치 ‘구원 증서’나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쥐는 것처럼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영원히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의 한 측면이기는 하지만, 구원의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구원을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지속되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바울이 말하지만(빌 4:3), 믿음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암시(계 3:5)도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분을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빌 2:12). 구원이 이미 시작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완성시켜 가야 할 몫이 남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과 넓은 문, 좁은 길과 넓은 길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마 7:13-14). 새번역 성경은 이 본문 위에 ‘좁은 문’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는데, 여기서 보듯 많은 사람이 이 본문을 ‘문의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비유는 ‘길의 비유’라고 보아야 합니다. 구원은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으로 이르는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구원은 한 순간에 완성되는 무엇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무엇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성경 말씀을 제대로 본다면, 구원은 손에 쥘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신약성경의 빛에서 본다면, “믿음을 가져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에 속합니다. 믿음은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성경에서는 명사형 ‘믿음’보다 동사형 ‘믿다’가 월등히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후대 기독교는 믿음을 교리의 수용으로 왜곡했습니다.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 다릅니다. 정확한 의미에서 믿음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삼위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 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믿는 것이요, 그 사랑의 관계가 곧 구원의 본질입니다.
셋째, 언급한 두 종류의 질문은 세 가지 면에서 성경적인 구원의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합니다. 1) 구원을 죽고 나서 얻는 것으로 축소합니다. 2) 우리의 영혼만이 구원의 대상인 것처럼 오해합니다. 3) 내세의 천국에 가는 것만이 구원이라고 왜곡합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구원은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영적 실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구원은 죽고 나서 혹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완성될 것이지만, 그 완전한 축복을 지금 여기서 믿음을 통해 미리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구원이 우리의 영혼에만 관계된다는 생각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영과 혼과 육을 포함하는 전 존재의 변화이며 우리는 성령의 다스림을 통해 그 변화를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장차 온전한 것이 올 때, 우리는 “신령한 몸”(고전 15:44) 즉 전적으로 새로운 존재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도 “한번 받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습니까?”라거나 “내가 언제 구원받았더라?”라고 물으시겠습니까? 바른 대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잘못된 질문을 제기하면 대답도 필연적으로 빗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에 대해 바로 알고 이 같은 질문들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한번 받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만날 때, 생명책에 이름이 이미 기록된 것에 감사하고, 성령의 다스림 아래에서 그 구원을 완성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은 날짜가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을 마주할 때,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 고백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살피고 그 믿음 안에서 매일을 살아 영원에 이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을 버리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롬 8:39)을 믿되,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서”(493장) 오늘을 살며,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427장) 삶을 살아가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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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22 10:10
감사하는 마음과 감사하지 않는 마음 사이에 중간 지대는 없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곧 모든 일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사랑 없는 사람이 남을 미워하듯이 말이다.
영적 삶에서는 사랑이나 미움에 대한 무관심의 태도가 없다.
이것이 바로 (무관심하게 보이는) 미온적 태도가 비난을 받는 이유다. 그것은 사랑으로 위장한 미움이다.
영혼이 '뜨겁지도 차갑지도'않은 것, 즉 숨김 없이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미온적 태도는,
고난이 없는 삶을 유지하고 스스로 설정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거역하는 상태다.
감사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것도 그분의 사랑의 선물이요, 존재하는 모든 순간도 은혜의 산물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함께 온다.
감사는 어떤 것도 당연시하지 않고, 결코 둔감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놀라움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킨다.
감사하는 사람은 소문이 아니라 경험으로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내가 매일 기쁘게/벤 패터슨/IVP p.97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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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22 09:55
모든 그리스도인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입니다.
- C.S 루이스 . 순전한 기독교(컬렉션) .p.27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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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22 09:54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확실하게
- 윌리엄 로우 William Law <엄숙한 부르심 Serious Call> Cap 16
p.90 고통의문제(컬렉션)/C.S루이스/홍성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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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20 17:59
특히, 당신이 리더라면 사람들의 땀을 요구하기 전에
그들의 마음을 먼저 만져 줘야 한다.
- 시간의 마스터/한 홍/비전과 리더십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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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20 17:58
매뉴얼을 만드는 인간과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인간은 천지 차이다.
매뉴얼은 최소한의 기본을 알기 위해서,
최악의 상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출발역이지 종착역이 아니란 얘기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인간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거나
순서를 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에 맞고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할 수도 없다.
로봇과 별 차이가 없다.
우리가 꿈꾸는 리더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분명한 지침과 가치관, 능력을 가지고
매뉴얼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시간을 탄력 있게
운영하는 절제된 자유인인 것이다.
- 시간의 마스터/한 홍/비전과 리더십/ p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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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17 13:48
영국의 한 신문사가 독자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삶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문 편집진이 선정한 네가지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모래성을 세우는 어린아이 - 잘된 작품 앞에서 휘파람을 부는 기술자나 예술가 -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아기를 목욕시키는 어머니 - 어렵고 위험한 수술을 성공리에 마쳐 환자의 생명을 살린 의사
신문 편집진은 왕,황제, 백만장자나 다른 부자와 권력자들로
답을 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 놀랐습니다.
베란 울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을 찾다보면 배를 만들거나,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아들을 가르치거나, 정원에 다알리아를 키우거나, 고비 사막에서 공룡일을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라디에이터 밑으로 굴러 들어간 단추를 찾듯 행복을 찾아 헤매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 그 자체가 목적인 양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루 24시간을 열심히 살면서 자신이 행복한 사람임을 알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
그보다 더 신나는게 있을까???
- 햇살 한 숟가락p.181,182/홍종락옮김/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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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17 13:45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
평생 내가 하루 24시간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늘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나침반의 비유를 들고 싶다. 잘 알듯이, 나침반의 바늘은 북극을 가리키는 성질을 갖고 있다.
북극은 나침반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나침반의 바늘을 옆으로 밀면 그것은 북극이 아닌 다른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을 떼면, 그것은 언제나 즉시 다시 북극을 향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늘 바쁘다.
어머니는 아이를 돌보느라, 학생은 책과 씨름 하느라, 트럭 운전수는 운전을 하느라 바쁘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의 주의를 하나님으로 부터 떼어놓는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지 않는 순간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말고 마치 나침반이 북극을 향하듯이 하나님을 향하라.
이렇게 하나님은 향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이다.
- 세상과 충돌하라/A.W토저/규장 中 p.80
심슨 박사의 글에 대한 인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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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것들/읽어볼자료들 2007/10/17 13:42
힘이 센 강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약자 되게 하시어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해주셨습니다.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으로 지혜롭게 인생을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권력 있는 강자로 사람들의 찬사를 들으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으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인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즐기고 감사할 수 있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희망했던 것은 모두 받았습니다.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 하나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 남북 전쟁에서 장애인이 된 남군 무명 용사가 쓴 기도문
도전과 기회 3C 혁명 中 /강영우/생명의말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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